2011년 2월 27일 일요일

건축과 가구

건축과 가구 디자인 역사의 축약판


가구 중에서 의자만큼 개인적인 성향을 가진 가구는 없다.
물론 침대도 개인의 것이지만, 같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테이블 역시 집에서는 가족,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이다.
수납장이나 부엌가구, 소파 등 대부분이 공동 소유다. 책상과 함께 의자는
가구 중에서 가장 사적인 소유의 대상이다. 책상과 달리 의자는 사람의
인체를 닮아 있고 사람과 신체접촉이 가장 빈번하다는 점에서 정이
많이 드는 애착의 대상이다. 의자의 이런 성격은 의자를, 가구는 물론
건축의 축약판이 되도록 만들었다. 수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 철학, 자신의 조형언어를 상징하고 압축하는 대상으로
의자를 선택했다.

거장 건축가와 디자이너 치고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상징하는 의자가
없는 사람은 별로 없다. 모던 건축의 아버지인 미스 반 데어 로에 하면
바르셀로나 의자가 떠오르고,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명인인
아르네 야콥센 하면 개미 의자가 떠오르는 식이다. 따라서 20세기
의자 디자인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곧 현대 건축과 디자인 철학과
그 기술의 진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들이 창조한 의자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삶을 변화시키려 한 디자이너의 의지와 욕망, 그리고 기술과
조형이 낳은 기능과 시각적 즐거움을 같이 음미할 수 있다. 20세기
디자인 아이콘으로 소개하는 의자는 불과 50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의자들은 모던 디자인의 표준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20세기 삶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일조한 의자들인 것이다.

<Barcelona chair>













<An Ant chair with tubular steel legs>






















장식에서 구조


20세기 초, 모더니즘 태동기 의자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구조의
발견에 있다. 그 전 시대까지 의자에 쏟은 가장 큰 노력은 바로
장식이었다.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의자들의 특징은 의자의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리가 쭉 뻗어 있는가, 동물 다리처럼
휘어 있는가, 장식과 기교가 얼마나 정교한가, 어떤 장식이
쓰였는가, 그런 것들을 기준으로 나뉜다. 그리고 4개의 다리, 좌판,
팔걸이, 등받이라는 별개의 요소가 합쳐진다는, 의자의 기본
구조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20세기의 모더니스트들은 이 구조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장식을 걷어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의자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의자는 꼭 4개의 다리로 지탱되어야 하는가? 의자를 구성하는 4가지
기본 요소를 하나의 유기적 형태에 녹여낼 수 없는가? 의자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만 남긴다면 그 형태는 어떻게 될까?
쉽고 빠르고 저렴하게 대량으로 생산하려면 어떤 형태를 갖춰야
하는가? 운반과 이동이 간편하려면? 몸을 어떻게 편안하게 받쳐줄
것인가? 이런 것들이 의자 디자인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다. 특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의자를 보급해야겠다는
모더니스트들의 이상과 의지는 단순한 형태 속에서도 다양한 조형을
낳도록 만든 원동력이다. 물론 여기에 디자이너 개인의 개성과
조형적 스타일도 분명 한몫을 했다. 장식을 벗어나 이렇게 다양한
각도로 의자에 접근하자 20세기 의자는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폭발적인 다양성을 낳았다.

강철관과 플라스틱의 발견
20세기 의자 디자인에서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혁신은 바로 새로운 재료의 발견이다. 전 시대 의자의 가장 보편적인
재료는 나무와 천이었다. 20세기 전반기에 강철관이 추가되었고,
중반 이후에 섬유유리와 플라스틱의 도입이라는 엄청난 혁신이
이루어졌다. 강철관은 특히 의자 다리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낳았다. 속이 빈 강철관은 강도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유연했다.
따라서 부피는 나무만큼 크지 않으면서도 하중을 잘 견딜 수 있었다.
무엇보다 캔틸레버 구조처럼 한쪽으로만 다리가 치우쳐도 하중을
견딜 수 있게 된 점은 커다란 혁신이었다. 이에 따라 더 이상 4개,
또는 3개의 다리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 꼭 기존의 막대기
형태의 다리일 필요도 없어졌다. 강철관은 다양한 조형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또한 형태적으로도 세련미가 더해졌다. 예를 들어
개미의자나 DAR의 그 얇은 다리를 보라. 그 의자에는 그 얇은
다리가 적격이다. 강철관이라는 재료가 의자를 무거움으로부터
해방해 늘씬하고 날렵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섬유유리와 플라스틱은 금형을 만들면 한번에 사출성형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낳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에게 조형의 자유를 엄청 넓혀주었다는 점이다.
찰스레이 임스의 ‘라 셰즈(La Chaise)’ 의자는 섬유유리로
제작되었는데, 그 형태는 마치 추상 조각을 보는 듯하며 대단히
유기적이다. 재료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필립 스탁, 론 아라드, 재스퍼 모리슨 같은 이른바 슈퍼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독창성을 알리는 데 플라스틱의 혜택을 톡톡히 보았다.
또한 이탈리아가 후발주자로서 가구산업의 중심에 서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바로 플라스틱이다.

<DAR>























<La_Chaise>






















명품 의자의 대중화 시대
의자를 포함한 가구는 패션이나 자동차만큼 대중적인 명품이
되기 힘들다. 무엇보다 집안에 있으므로 자랑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자랑할 수 없는 물건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대중의 심리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개인의 진정한 안목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상은 가방이나 옷, 자동차가 아닌 가구인지도 모른다.
잘 디자인된 의자야말로 진정 안목 높은 소비자만이 큰마음 먹고
구매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소수의 디자인이나
예술계통의 종사자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의자가 오늘날 점점 더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사무실에 가서야 볼 수 있었던
의자는 오늘날 카페와 레스토랑, 쇼룸, 라운지 등 공적인 공간에서
점점 더 쉽게 눈에 뛰기 시작했다. 이제 점차 실내로 대중의 관심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의자는 특히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하는 물건이다. 대부분의 사무실 노동자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있다. 이 의자는 사람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이 보편화된 현대인에게
컴퓨터, 휴대폰만큼이나 의자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의자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선택의 폭이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의자는 우리
삶을 이루는 큰 환경 중에 하나이고, 그 시대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문화 척도이다.



기획·구성 월간 <디자인>
글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주간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함-sj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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